"지금까지 기업들은 ESG(환경·책임·투명경영)에서 '환경' 부문에 중점을 뒀다. 향후에는 '책임' 요소의 중요성이 커질 것이다."
노리나 허츠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특임교수(Honorary Professor)가 최근 매일경제 MK 비즈니스 스토리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단호하게 이같이 주장했다. 허츠 교수는 "여태까지 ESG 관련 이야기는 대개 기업들이 어떻게 탄소발자국을 줄일까에 대한 내용에 중점을 뒀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그는 "이제 점차 'S' 부문의 중요성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허츠 교수는 "ESG에서 'S'는 조직원들이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가를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이는 투자자들은 기업 구성원의 생각과 감정을 고려해 투자할 것이라는 뜻이다. 이 때문에 직원들이 외로움을 덜 타고 조직에 소속감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해진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허츠 교수는 저서 '소리 없는 정복(The Silent Takeover: Global Capitalism and the Death of Democracy, 2002)' '부채 위협(The Debt Threat: How Debt Is Destroying the Developing World...and Threatening Us All, 2006)' '누가 내 생각을 움직이는가(Eyes Wide Open: How to Make Smart Decisions in a Confusing World, 2013)'에 이어 작년 '고립의 시대(The Lonely Century: How to Restore Human Connection in a World That's Pulling Apart)'를 펴냈다. '고립의 시대'에서 그는 많은 현대인이 겪고 있는 외로움을 다뤘다. 매일경제 MK 비즈니스 스토리는 직장인 외로움의 원인과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 등에 대해 허츠 교수와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허츠 교수와의 일문일답.
―저서 '고립의 시대'를 집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세 가지가 있었다. 첫째, 5년여 전부터 나를 찾아와 외롭다고 말하는 학생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다. 둘째, 연구를 하며 전 세계적으로 포퓰리즘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 포퓰리즘을 행사하는 각국 리더를 뽑은 사람들을 인터뷰했는데 이들은 포퓰리즘 정치를 펼치는 리더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공동체(community)에 속하기 전에는 외로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나는 아마존 알렉사(인공지능)를 구매했다. 알렉사와 교류하며 점차 더 가까워진 느낌을 받았다.
이 세 가지 경험을 종합해 외로움의 경제(loneliness economy) 개념을 수립했다. 외로움의 경제는 사람들에게 공동체와 (누군가의) 연결을 제공하는 서비스·제품을 기반으로 한 경제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찾아오기도 전에 외로움의 경제는 시작됐다. 이는 심각한 문제다. 외로움의 경제 연구에 파고들며 우리는 현재 글로벌 외로움 위기(global loneliness crisis)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금세 깨달았다. 영국의 인터넷 기반 시장조사·데이터 분석 기업 유고브(YouGov)가 2019년 7월 3일부터 5일까지 18세 이상 미국인 125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미국 밀레니엄세대 5명 중 1명은 '친구가 없다'고 말했다. 2010년 영국 자선단체 '정신건강재단(Mental Health Foundation)'의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영국에서는 18~34세 5명 중 3명은 자주 또는 항상 외롭다고 말한다. 이런 글로벌 외로움을 이끈 요인이 무엇인지, 이에 대한 영향과 해결책은 무엇인지를 조사하며 해당 저서를 집필하게 됐다.
―코로나19 위기가 찾아오기 전에 저서를 쓰기 시작했나.
▷그렇다. 약 4년 전에 집필하기 시작했다. 집필이 마무리될 때쯤에 코로나19 위기가 시작됐다. 그래서 바로 도서를 출간하지 않고 기다렸다. 코로나19로 인한 사람들의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도 책에 담았다. 코로나19는 사람들의 외로움을 극대화했다.
―외로움을 어떻게 정의하는가.
▷저서에서도 설명했듯 외로움은 원래 우리가 친밀감을 느끼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개인 스스로에게도 단절감을 느끼는 현상이다. 개인이 본인 스스로에게도 단절감을 느끼는 의미를 더 자세히 얘기하겠다. 현대사회에서 개인은 무언가에 대한 성과를 내고 본인의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특히 디지털 시대에서는 이런 압박이 더욱 심하다.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게시물에) '좋아요'를 많이 받는다거나 해당 게시물이 많이 공유되도록 개인은 최상의 모습을 보이려 한다.
오픈형 사무실(open plan offices)에서는 조직원들이 스스로를 하나의 '완벽한 브랜드'로 보이려 애쓴다. 모든 대화가 공개적으로 들리는 오픈형 사무실에서 조직원들은 자기 자신을 타인이 원하는 유형의 사람으로 만든다. 이런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본인의 진정한 모습으로부터 멀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내가 면담한 한 10대 학생은 "아바타의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는 특히 오늘날 젊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감정이다.
―'외로움의 경제' 용어를 창안했다. 외로움의 경제가 어떻게 시작됐는지 더 자세히 알려달라.
▷지난 수십 년 동안 외로움을 겪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이런 현상은 시장에 기회를 제공했다. 사람들은 외로움을 느끼는 동시에 타인과의 연결을 갈망한다. 외로움은 인간의 본능이 아니다. 인간은 서로 함께하는 동물(creature of togetherness)이다. 이 때문에 외로움을 느낄수록 사람들은 타인과 더 연결되길 바란다. 한국의 '혼족' 역시 온라인에서 커뮤니티를 찾는다. 혼자 활동하는 동시에 온라인에서 커뮤니티를 찾으며 타인과 연결되길 바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에게 연결성을 제공하는 서비스와 상품이 많아졌다. 외로움의 경제는 이렇게 시작됐다. 외로움의 경제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부터 커졌다. 지난 몇 년 동안 음악 페스티벌, 방탈출 카페 등을 가는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가 많아졌다. 공유오피스 역시 외로움의 경제가 낳은 '상품'이라 볼 수 있다.
한국에서는 콜라텍이 최근 다시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는 노년층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공간이다. 이렇게 코로나19 팬데믹이 찾아오기 전부터 많은 기업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면 연결을 제공하는 서비스와 상품을 만들었다.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외로움의 경제가 시작된 지는 얼마나 됐나.
▷10년 정도 됐다. 1980년대부터 개인의 외로움은 꾸준히 커졌지만 스마트폰 사용이 흔해진 2011년부터 사람들의 외로움 정도는 급격히 상승했다. 이때 시장에서는 '사람들의 외로움이 치솟았다. 그로 인해 사람들이 갈망하는 타인과의 연결성을 제공하는 서비스와 상품을 찾아야 한다'는 시각이 있었고, 이로 인해 외로움의 경제가 시작됐다.
―외로움의 경제가 낳은 기업의 예를 들어 달라.
▷저서에서도 설명한 렌트어프렌드(RentAFriend)가 있다. 미국인 기업가 스콧 로젠바움이 2009년 설립한 렌트어프렌드는 말 그대로 누군가를 친구로 대여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로젠바움은 친구 대여 시장이 일본에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렌트어프렌드 사업을 시작했다(렌트어프렌드 웹사이트에 따르면 올해 2월 4일 기준 렌트어프렌드 서비스에서 활동하는 '친구'는 62만1500명 이상이며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페이스타임, 줌, 문자, 전화 등을 통한 '온라인 친구 서비스(Virtual Friend Services)'를 제공하고 있다).
―직장에서 사람들이 외로움을 느끼는 이유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우선 직장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외로워진 이유에는 도시화가 있다. 도시는 일부 사람들에게 외로운 장소다. 이웃의 이름을 모르고, 수많은 사람들이 빠른 걸음으로 개인을 지나쳐가는 도시에서 사람들은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앞서 말한 스마트폰의 보편화 역시 외로움을 강화했다.
직장에서는 비오픈형 사무실에서보다 오픈형 사무실에서 대화가 덜 활발하게 이뤄지면 직원들이 외로움을 겪을 수 있다. 오픈형 사무실이라도 기술 발전으로 온라인에서 대화가 주로 이뤄지면 개인은 외로워질 수 있다. 업무 마감 기한이 더 빡빡해지고 성과에 대한 중요성이 더 강조되면서 직원들 간 교류가 줄어드는 것 역시 외로움의 요인이다.
―온라인을 통한 연결만으로도 사람들의 외로움은 사라질까.
▷아니다. 사람들은 온라인 공동체를 통한 타인과의 연결을 원하는 동시에 대면으로 직접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고 싶어한다. 기술이 발전하고 온라인 커뮤니티가 더 많이 형성되더라도 타인과 대면으로 연결하고 싶은 사람들의 갈망은 시들지 않을 것이다. 향후 몇 년 동안 온라인·오프라인 연결에 대한 사람들의 요구는 커져 갈 것이다.
단식 기간 후에 배가 고픈 것과 마찬가지로 팬데믹이 사라지면 사람들은 오래 기다린 만큼 직접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할 것이다.
―직장에서 외로움 관련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조직원이 자신의 외로움에 대해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즈니스 리더들은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우선적으로 비즈니스 리더들은 외로움이 사업에 얼마나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지 깨달아야 한다. 외로운 조직원들은 (업무) 생산성이 저하되고 동기부여가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퇴사할 확률도 높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직장에서 친구가 있는 사람이 친구가 없는 직원보다 업무에 몰입할 확률이 7배 더 높다. 외로움이 조직에 불러올 수 있는 이러한 악영향을 비즈니스 리더는 깨달아야 한다.
이를 깨달은 다음에 비즈니스 리더는 외로움을 타는 직원들과 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사람들은 본인이 외롭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 수치심을 느낀다. 따라서 리더가 조직원들에게 '외로움을 느끼고 있습니까'라고 묻는 것은 별 소용없다. 이런 질문을 들으면 대개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이기 때문이다. 대신 리더들은 조직원 외로움의 신호를 알아차려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직장에서 소속감을 느끼도록 만들어야 한다.
―리더는 조직원들이 직장에서 소속감을 느끼도록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열린 마음(openness)으로 직원들과 소통하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이다. 영국에서 일부 경영자들은 조직원들과 리더 본인의 정신건강 문제에 대해 대화한다. 예로 영국의 한 대형 은행 최고급 리더 두 명이 본인의 정신건강 문제와 우울증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렇게 리더가 스스로 약한 면을 보여주고 인정하는 것이 조직원들에게 소속감을 느끼도록 만드는 한 가지 방법이다.
―직원들이 소속감을 느끼도록 조직 환경을 바꿀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이 있다면.
▷첫째, 직원들이 이메일이나 전화를 통해 상호 교류하는 시간을 줄여라. 이를 대면 교류로 대체해야 한다. 온라인 교류보다 대면 교류의 퀄리티가 훨씬 더 좋다. 물론 현 팬데믹 상황에서는 대면 교류를 하는 것이 어렵다. 하지만 팬데믹 상황이 잦아들수록 대면 교류를 실행해야 한다. 대면 교류를 하는 기업의 예를 들어보겠다. 음반 회사 워너뮤직그룹에서는 회의 참석자들이 바구니 안에 휴대전화를 넣는다. 회의 시간에 휴대전화에 방해받지 않고 서로의 말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조직원들끼리 점심을 같이 먹는 것 역시 소속감을 느끼는 데 도움된다. 기업들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사무실 환경을 생각할 때 조직원들이 식사를 함께하는 분위기를 버리지 말아야 한다. 다시 한번 강조한다. 함께하는 점심 식사는 조직원들에게 소속감을 주는 데 주요 역할을 한다.
비슷한 맥락으로 조직원들이 같은 시간에 휴식을 취하도록 만드는 것 역시 소속감을 형성하는 데 기여한다. 뱅크오브아메리카가 이런 휴식 시간을 제공했다.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뱅크오브아메리카는 빌딩의 전 직원이 같은 시간에 커피 휴식을 갖도록 만들었다. 이렇게 같은 시간에 휴식 시간을 갖는 것은 사람들에게 소속감을 더 크게 느끼도록 만드는 것으로 확인됐다. 직원들이 함께 봉사활동을 하는 것 역시 연결성과 소속감을 더 느끼도록 만든다. 세일즈포스의 봉사활동 프로그램이 이를 입증한다.
직원들이 무언가를 함께하는 것 외에도 소속감을 느끼는 방식은 개인에 대한 칭찬과 인정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의 도움, 친절함, 협력 등에 대해 인정해야 한다. 최근 몇 년 동안 직장에서는 칭찬과 협력, 인정 등에 대한 가치는 떨어지고 경쟁심, 성과 등에 대한 가치가 높아졌다.
―직원의 도움, 친절함, 협력 등을 인정하는 제도를 가진 기업이 있다면.
▷시스코가 있다. 시스코에서는 안내 데스크 직원부터 시니어급 관리자까지 누구나 친절함을 베푼 직원을 지명하는 시스템이 있다. 지목된 직원은 현금으로 리워드를 받는다. 금액은 100~1만달러다. 이는 기업이 직원에게 '당신의 친절함, 도움, 협력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알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시스코의 이직률은 해당 산업 평균 수치의 절반이다. 이렇게 조직원들을 인정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외로움은 타인과 단절되는 느낌만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지 못할 때도 외로움이 생긴다.
―외로움 문제 해결 방법과 관련해 한국 기업들에 조언한다면.
▷앞서 말했듯 기업들은 '직원들에게 소속감을 어떻게 더 느끼게 만들까'를 고민해야 한다. 앞으로 투자자들은 조직원들의 감정도 (투자 요소로) 고려할 것이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직원들이 외로움을 덜 느끼도록 만들어야 한다.
나아가 기업들은 단기·계약직 근로자들의 외로움도 챙겨야 한다.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월급이 100만원 이하인 한국 근로자 중 절반 이상이 외로움을 탄다. 부유해도 외로움을 겪지만, 근로소득이 낮은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더 외로움을 느낀다. 이 때문에 고용주들은 근로소득이 상대적으로 낮은 사람들 역시 조직에 소속감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도 외로움의 경제가 계속될 것으로 전망하는가.
▷그렇다. 지난 100년을 기준으로 현재처럼 개인의 외로움지수가 높았던 적이 없다.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은 사람들의 욕망은 크다. 이미 그 현상이 나타났다. (코로나 방역 단계가 풀린 후) 사람들은 영화관, 체육관, 콘서트장 등으로 달려갔다. 동시에 사람들, 특히 젊은 세대들은 온라인 세계에서 타인과 무언가를 같이하고 싶어한다.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커져만 갈 것이다. 이를 행하는 방법이 달라질 뿐이다.
고립된 생쥐들이 새로운 생쥐를 물어뜯듯 외로움은 우리 정치를 극단주의와 포퓰리즘으로 몰아간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지자들이 지난해 1월 미국 워싱턴DC 프리덤 플라자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 [AFP = 연합뉴스]
▶▶ 노리나 허츠 교수는…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MBA, 케임브리지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네덜란드 다위센베르흐 금융전문대학원, 로테르담 에라스무스대에서 교수로 경력을 쌓은 뒤 2014년부터 UCL 세계번영연구소(Institute for Global Prosperity)의 특임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17년부터 워너뮤직그룹의 사외이사를 함께 맡고 있다.
MZ세대 20% "친구가 없다"…전세계 `외로움 위기` 주의보 - 매일경제 (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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