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인터뷰한 경영사상가 찰스 핸디는 “할 일이 있고 사랑할 사람이 있고, 기대할 것이 있는 상태”를 행복으로 정의했다. 그는 인생 후반부에 대기업 임원에서 교수로, 작가로 직업을 바꿀수록 즐거움은 커지는 대신 소득은 줄더라고 했다.
검소한 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돈을 벌기 위해 인생의 너무 많은 시간을 쏟지 말라’고 충고했다. 생활 수준을 유지하려고, 원치 않는 일을 계속하면, 영혼이 망가진다고.
영국의 경영사상가에게 들은 인문학적 충고를 미국의 경제학 석학이 통계와 도표로 증명해 냈다.
97세의 행복통계학자 리처드 이스털린이 국내에 처음 출간한 ‘지적 행복론’은 ‘얼마나 부자가 되어야 행복할까?’에 대한 경제학적 해답이다. 경제학의 언어로 밝혀낸 행복의 맨 얼굴은 충격적이다.
“소득은 일정 수준을 넘으면 행복과 비례하지 않는다.”
돈을 벌기 위해 인생의 너무 많은 시간을 쏟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일정 임계치(연봉 7만 5천 달러)에 이르면 돈으로 인한 ‘행복 가성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른바 주류 경제학계에 일대 파란을 일으킨 ‘이스털린의 역설’이다.
소득이 늘어도 더 행복해지지 않는 이유는 ‘사회적 비교’ 때문이다.
이스털린 교수는 방대한 설문 조사 데이터를 통해 ‘소득, 건강, 가정 생활’이라는 행복의 3가지 잣대를 추출해냈고, ‘비교의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행복의 해법도 도출해낸다. 노교수는 “불황에는 과거의 좋았던 시절의 소득과 비교하고, 호황에는 더 잘 버는 다른 사람들의 소득과 비교해서 불행을 자처하는 버릇을 고치라”고 충고한다.
정 비교가 불가피하다면 소득은 과거의 가장 안 좋았던 시절, 건강은 부모 세대의 내 나이 때를 기준으로 비교하는 것이 좋다. 가정생활 또한 현재의 감사함을 드높이는 비교적 ‘건강한 비교’를 찾아내 배우자와 긍정적인 에너지를 누려야 한다고.
이스털린의 ‘지적 행복론’은 내가 읽어본 가장 다정한 경제학책이다. 결혼과 행복, 소득과 행복, 나이와 행복의 관계를 추출한 도표가 이토록 편안한 위로를 줄 줄이야!
우울하고 권위적이며 얌체 같고 복잡한 경제학 이미지를 일거에 무너뜨리는 97세 할아버지의 ‘해박한 스토리텔링’은 애덤 스미스 시절 경제학의 공리적 명예까지 회복시켰다. ‘행복경제학’의 창시자인 리처드 이스털린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경제학자로서 ‘행복의 가성비’를 측정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부자가 되기를 꿈꿨습니다. 그래서 궁금증이 생겼죠. 돈이 많으면 정말 더 행복해지는 걸까? 오랜 시간 공들여서 ‘삶의 만족도’를 묻는 체계화된 설문조사로 두 가지 데이터를 모았어요. 한 국가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는 ‘시계열 데이터’와 동시대의 국가들을 서로 비교하는 ‘횡단면 데이터’를 수집해서 분석했지요.
결과는 예상 밖이었습니다. ‘소득이 일정 수준에 이른 다음에는 더 이상 행복이 커지지 않는다’는 그래프가 완성됐어요. 이른바 ‘이스털린의 역설’이죠.”
-행복과 소득의 특이점은 구체적으로 어떤 추이를 보였죠?
“소득이 낮은 경우에는 소득이 늘면 행복도 증가합니다. GNP가 낮은 저소득국가보다 선진국이 더 행복 수준이 높고, 한 국가 내에서도 소득이 낮은 과거보다 현재가 더 행복 수준이 높았어요.
하지만, 연 소득이 7만 5천 달러를 초과하면 행복은 더 이상 증가하지 않아요. 소득이 임계치에 이르면 내가 다른 사람보다 돈을 더 많이 받을 때만 행복감을 느끼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모두가 소득이 증가하면 더 풍족해지는 것은 맞지만, 평균적으로 아무도 더 행복해지지는 않는다’는 모순을 만나게 됩니다.”
-그 ‘소득의 임계치’에 이른 주인공이 중산층과 선진국 국민이라고 가정하면, 그들은 더 많이 벌려고 아무리 아등바등 노력해도 더 행복해지지는 않는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실제로 미국은 70년 동안 실질 소득이 3배 증가했지만, 행복 수준의 장기적 추세는 변동이 없거나 하락세입니다. 행복과 소득은 단기적으로는 함께 움직이지만, 어느 시점에 이르면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결정적인 이유가 뭐죠?
“그 지점에서 사회적 비교가 활성화되기 때문이죠. 그때부터 핵심은 ‘얼마나 버느냐’가 아니라 남보다 많이 버느냐’죠. 실제로 제가 가르치는 제자들을 대상으로 졸업 후 연봉 선택 실험을 했습니다.
A 10만 달러를 번다(동기들은 20만 달러를 번다).
B 5만 달러를 번다(동기들은 2만 5천 달러를 번다).
제자 중 2/3가 B를 선택했어요. 절대적인 금액이 적더라도 내 소득이 친구의 소득보다 더 많은 상황을 선호했지요. 상황을 판단할 때 마음으로 정하는 준거 기준은 대부분 사회적 비교, 타인의 상황을 관찰하면서 설정됩니다. 내 소득이 증가할 때 내 준거 기준 즉 타인의 소득도 증가하기 때문에 소득 증가가 행복에 미치는 순효과는 미미해지는 거죠.”
-’행복을 증진하기 위한 처방으로 소득의 증가는 제로섬 게임이다’라는 이스털린의 역설은 보통 사람에게 굿뉴스인가요? 배드뉴스인가요?
“좋은 소식이라고 생각합니다. 행복하기 위해 돈을 좇는 무의미한 경쟁이 참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지요. 그러나 이 역설은 지금까지도 대중에 널리 알려지지도, 받아들여지지도 않았습니다. 이것이 제가 ‘지적 행복론’을 쓴 이유예요.”
그는 좋은 삶의 구성에서 ‘가지고 있는 것과 가지고 싶은 것’의 대비를 주목하라고 했다.
“소득이 증가할수록 이미 갖고 있는 것만큼 갖고 싶은 것의 목록도 계속 증가하죠. 주택, 고가의 가구, 자동차, 여행 등등. 랠프 월도 에머슨이 그랬어요. “욕구는 자라나는 거인과 같아서 그가 입은 외투가 자신을 덮을 만큼 컸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가지고 있는 것이 많을수록, 그리고 가지고 싶은 것이 적을수록 행복의 수준은 높아집니다.”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덜 갖고 싶어 하는 것’이로군요.
“정확합니다! 많은 사람이 필요 이상의 큰 집과 자동차를 사고 큰 빚에 시달립니다. 노후에는 필요한 것들도 줄어들고 물질적 욕구도 감소하죠. 대출금과 그 밖의 빚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면 행복 수준도 올라갑니다.
교훈은 뭘까요? 주변을 따라가지 말고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을 쟁취하고 불필요한 빚을 만들지 않으면, 행복감이 올라가요. 언젠가 저도 축구 코치의 집에 놀러 가서는 저택의 웅장함에 놀라 돌아오는 길에 의기소침해졌어요. 하지만 곧 깨달았죠. 축구 코치의 집이 아니라 좋아하는 축구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비교 상황에 놓여도 ‘부럽지가 않은 상태’는 거의 공중 부양의 경지입니다. 자족과 자제력은 엄청난 에너지가 드는 일이지요. 행복을 결정하는 또 다른 요소는 무엇인가요?
“조사 결과 어른의 행복은 대체로 경제 상황, 가정생활, 건강이라는 세 가지 조건에 달려 있어요. 행복 수준을 높이는 좀 더 확실한 방법은 돈 대신 시간을 활용하는 겁니다. 시간은 한정된 자원이죠.
돈 버는 데 시간을 쓰기보다 건강이나 가정생활에 시간을 쓰면 행복 증진 효과가 매우 뚜렷합니다. 많은 사람이 경제 상황은 서로를 비교하지만, 건강과 가정생활은 그 자신의 히스토리 안에서 과거와 비교하거든요.”
-건강은 자랑할수록 서로의 행복에 도움이 되나요?
“그렇습니다. 건강은 비교로 선순환이 일어나는 구조입니다. 소득이 제로섬게임이라면, 건강은 윈윈 패턴이죠. 모두가 소득에 올인하면 아무도 예전보다 더 행복해지지 않지만, 모두가 건강에 힘쓰면 다 함께 더 행복해져요. 건강의 준거 기준은 타인이 아니라 과거의 자신(좋았거나 나빴던 시절)입니다. 타인의 건강 정보는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이죠.
물론 노화라는 변수가 있지만, 그건 매우 느리고 대체로 공평하게 진행됩니다. 당장 산책을 시작하고 건강하게 먹고 정기적으로 의사를 찾는다면 우리는 어제보다 더 행복해질 수 있어요.”
-결혼과 자녀는 행복에 어느 정도로 영향을 미칩니까?
“데이터를 보면 함께 사는 파트너가 생기면 더 행복해집니다. 결혼 그 자체가 부가적인 효과를 내지는 않아요. 결혼 후 2년이 지나면 행복은 결혼 이전의 수준으로 되돌아왔습니다. 또한 자녀가 있다고 부모가 인생 전반에 더 행복해졌는지는 불확실해요. 남녀에 따라 다르고 가치관이나 재정 변화에 따라 행복 수준이 오르락내리락 변화했어요.”
-이혼은 어떤가요?
“혼자 사는 사람이 배우자와 사는 사람보다 평균적으로 덜 행복하지만, 그 또한 혼자 살게 된 이유에 따라 달라져요. 만족도가 가장 낮은 사람은 별거 중인 사람입니다. 결혼 상태만 유지하면서 함께 살지 않는 사람들, 과도기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힘든 시간을 보냅니다.”
-중국, 소련, 동독 등 사회주의 국가들이 자본주의화 되던 1990년대 중반, 행복 수준이 오히려 떨어졌다는 통계가 흥미롭더군요. GDP는 급격히 증가했는데도 삶의 만족도는 왜 낮아진 거죠?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과 고용 안정성이 무너지고,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남자들의 음주, 흡연, 자살률이 올라가고 가정 폭력과 이혼 가정이 늘면서 평범한 삶의 기반이 무너졌어요. 사회주의 체제로 잘나가던 시절보다 복지 정책에서 대거 후퇴했죠.
-고용 안정성은 개인의 행복에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미국인의 72%가 로봇으로 인한 실직을 걱정하는 반면 스웨덴 국민의 80%가 AI의 등장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통계는 의미심장하더군요. “우리는 일자리를 보호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보호하는 것은 노동자입니다”라고 했던 스웨덴 고용부 장관의 발언이 신선했어요.
“일자리의 추세는 개인이 막을 수도 완벽하게 대비할 수도 없지요. 그래서 국가 정책의 방향이 중요합니다. 스웨덴 국민은 일자리가 사라지고 로봇으로 자동화되는 걸 걱정하지 않아요. 노동자는 생활비 지원을 받으면서 새로운 일을 얻기 위해 재교육을 받을 수 있거든요.”
-하지만 높은 복지 수준, 높은 행복도를 자랑하는 스웨덴이 왜 자살률은 높은 걸까요?
“데이터만 보면 낮은 행복 수준 그 자체가 자살의 원인이라는 증거는 없어요. 자살률 증가에 유의미한 요인은 주류, 특히 증류주 소비량입니다. 이른바 보드카 벨트로 알려진 국가들이 높은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어요. 이에 반해 음주가 금지된 이슬람 국가들의 자살률은 낮지요.”
-부탄의 GDP는 매우 낮지만 행복지수가 북유럽 국가만큼 높은 이유는 뭡니까?
“부탄의 국민총행복 지수는 높지 않습니다.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부탄의 국민총행복 지수는 154개국 중 100위에 가깝고, 이웃 나라인 네팔과 거의 같습니다. 잘못 알려진 사실입니다.”
-고백하자면 ‘이스털린의 역설’을 알기 전까지, 저는 진화심리학과 행동경제학이 주름잡는 요즘 같은 시대에 행복과 경제학의 조합은 왠지 ‘뒷북친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경제학이 인간의 행복에 관한 학문이라고 생각했어요. 공공의 행복은 경제학의 궁극의 관심사였으니까요. 경제학이 학문으로 자리 잡은 19세기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행복과 경제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어요.”
-하지만 그렇게 공의롭게 시작했던 경제학이 언제부턴가 행복과 ‘손절’을 시작하지 않았습니까?
“맞아요. 빌프레도 파레토라는 이탈리아 경제학자 때부터였어요. 파레토는 경제학은 행복이 아니라 의사결정에 관한 학문이라고 주장했어요. 어찌 됐건 파레토 때문에 경제학은 애덤 스미스가 ‘도덕 감정론’에서 일궈낸 도덕 철학의 한 분야에서, 관찰과 방정식이 가득한 데이터 집약적 현대 경제학으로 분화했습니다.
파레토 이후 경제학을 ‘선택의 학문’으로 보는 관점이 20세기를 지배했죠. 이때부터 경제학에서 행복은 1인당 공급되는 재화의 양으로 축소됐어요. 그러나 차츰 행복을 연구하는 저 같은 경제학자들이 늘어났고, 행복을 제대로 측정하기 시작했어요. 인간을 단순 행위자 혹은 생산 요소가 아니라 애덤 스미스처럼 감정을 지닌 한 사람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거죠. 비로소 인간이 느끼는 고통과 쾌락을 진지하게 측정하고 연구할 수 있게 된 겁니다.”
-현재까지도 넛지를 비롯한 ‘선택 설계’를 파고드는 행동경제학자들이 주류 경제학의 트렌드를 이끌고 있어요. 행복경제학과는 어떤 면에서 차이가 있나요?
“행동경제학과 행복경제학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에 대해 주의를 기울인다는 데 공통점이 있어요.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사람들이 어떻게 선택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열었지요.
차이는 두 가지입니다. 행동경제학은 의사 결정의 과정을 분석하지만 행복경제학은 의사결정의 결과를 분석합니다. 예컨대 행동경제학자는 ‘자녀를 몇 명 낳을까?’ 결정 방법을 탐구하지만, 행복경제학자는 ‘자녀가 있으면 더 행복한가’를 묻습니다.
전자는 의사 결정에 따른 효용, 후자는 경험의 효용 즉 실현된 만족도에 관심을 두는 거죠. 그래서 행동경제학자는 사회 심리 실험을 사용하고 행복경제학자는 사회 조사 데이터를 활용합니다.”
-행복을 사회과학의 주제로 탐구하기 시작한 것도 최근이죠?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입니다. 그 이전의 행복 연구는 인문학 분야였죠. 아리스토텔레스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주로 무엇이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가, 즉 좋은 삶을 사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했어요.”
-연구해보니 행복을 장기적인 추세에서 관찰하는 것이 왜 중요하던가요?
“짧은 기간 동안 행복을 관찰하면 대체로 경제 상황에 따라 오르내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행복의 추세를 증거로 ‘고정해서’ 파악하려면 30년 정도의 장기 관찰이 필수였습니다.”
-긴 시간 관찰해보면 몇 살 때 삶의 만족도가 가장 높습니까?
“보통은 50세까지 하락하다가 나이가 들면서 계속 상승하는 U자형 곡선을 그린다고 알고 있지요. 아닙니다. 행복에 관한 생애 주기는 파도 모양입니다. 10대까지 상승하다 20대 초 중반에 바닥을 칩니다. 이후로 30대 중후반까지 서서히 상승하죠. 그러다 하락세로 접어들고 50대가 되면 다시 바닥을 쳐요. 마지막으로 가파른 상승세를 타면서 70대에 최고조에 달합니다. 그런 다음 세 번째로 하락세를 보이죠.
정리하면 평균적으로 10대, 30대 후반, 70대에 최고조를 보이지만, 20대, 50대, 80대 이후에는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이 패턴에는 경제 상황, 가정, 건강이라는 행복의 3가지 요소가 잘 녹아있어요. 20대 하락은 직장 때문에 생겨요. 20대에서 중년까지는 주로 가정생활이 행복을 좌우하죠. 60대에 이르면 은퇴로 행복 수준이 올라가고 노년의 황금기가 지나면 배우자 사망과 건강 악화로 다시 바닥을 칩니다.”
-교수님은 어느 시기에 어떤 이유로 가장 행복하셨나요?
“저는 행복이 바닥을 친다는 50대에 재혼하면서 인생에 가장 행복한 시기를 맞았습니다.”
-여성과 남성 중 누가 더 행복합니까?
“중년까지는 여성이 더 이후로는 남성이 더 행복해합니다. 이유는 여성이 남성보다 일찍 결혼하고 평균 수명이 길고 노동 시장 참여율이 낮기 때문입니다.
젊은 여성이 남성보다 더 행복한 이유는 결혼할 가능성이 더 높아서예요. 남성은 직업과 결혼에서 더 치열하게 경쟁하기 때문에 행복도가 떨어지죠. 노년에는 여성의 배우자가 먼저 세상을 떠나는 경향이 있어서 여성의 행복 수준이 감소합니다. 운 좋게 장수하는 남자들은 여전히 아내가 살아 있을 가능성이 높고, 그래서 배우자를 잃은 여성보다 더 행복한 것이지요.”
-행복은 지금 시대의 가장 큰 이슈가 맞지만, 저는 얼마 전 ‘최선의 고통’을 쓴 옥스퍼드대학 심리학자 폴 블룸과의 인터뷰를 통해 인간은 쾌락만큼 고통을 추구하는 진화적 존재라는 깨달음도 얻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경제학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이죠?
“경제학을 복지가 아니라 ‘선택의 과학’으로 보는 경제학자들이 여전히 많아요. 이들의 연구는 사람들의 선택을 설명하는 것에서 멈춥니다. 저는 행복을 증진하기 위해 내린 결정이 실제로 원하는 결과를 불러왔는지를 오랜 기간 탐구했어요.
행복경제학이 필요한 이유는 분명합니다. 사회적 비교의 결과를 보여주고, 행복가성비를 높이는 방법을 증거로 제공하기 때문이죠.”
97세 경제학자가 이야기하는 ‘증거’라는 단어가 강렬하게 다가왔다.
-교수님,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여러 번 설명했듯이 GDP의 증가는 행복을 담보하지 않았어요. 산업 혁명은 개인의 물질적 삶을 개선했지만, 경제 성장 그 자체가 개인의 행복을 증진한다는 증거는 없었어요. 오히려 자유시장경제로의 이행 과정에서 행복에 중요한 바탕인 고용, 의료서비스 등이 불안정해졌고, 가정 생활의 긴장을 초래했죠.
역사적으로 보면 산업 혁명은 자연과학의 산물이고, 인구 혁명은 생명과학의 산물입니다. 행복 혁명은 조사 데이터를 활용한 사회과학의 산물이죠. 각각의 혁명은 독립적이지만, 상호의존성도 있어요. 여러분은 이 세 가지 혁명의 은혜로운 수혜자입니다.
일단 미래에 대해 너무 겁먹지 마세요. 비교에 함몰되지 않겠다는 개인의 결정, 그리고 고용 복지가 잘 설계된 정부의 정책 결정이 행복 혁명을 끌어내리라 확신합니다.”
-이 책의 헤드 카피는 ‘97세 경제학 교수가 물질의 시대에 던지는 질문’이지요. 마지막으로 “얼마나 부자가 되어야 행복할까?” 이 물음에 현답을 부탁합니다.
“여러분보다 더 많이 살아온 노교수의 말을 믿어도 좋습니다. 97세가 될 때까지 저는 수많은 데이터와 증거를 들이밀며 입증했어요. 부자가 된다고 더 행복해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어요. 부자가 되려고 노력하는 시간을 줄이고, 가정 생활과 건강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세요. 진심으로 ‘행복의 가성비’를 생각한다면, 돈 버는 데는 관심을 덜 가지는 게 좋습니다.”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얼마나 벌면 행복해질까?” 97세 美 경제학자의 팩트 체크 - 조선비즈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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