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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독서

양주 포틀래치

by sperantia 2022. 2. 7.

미국 서북부 해안 부근의 아메리칸 인디언 사회에 포틀래치(potlatch)라는 겨울 축제가 있었다. 인류학자 루드 베네딕트의 저서 <문화의 유형>에는 밴쿠버섬 원주민인 콰키우틀족 사이에서 행해졌던 포틀래치에 대해 기술돼 있다.

 

콰키우틀족에 한 추장이 있었다. 그는 자기 부족원들이나 이웃 부족의 추장들에게 자신의 부와 권력을 확실하게 인정받고 싶었다. 추장은 이웃 부족의 추장들을 초대한다. 추장은 이웃 추장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온갖 귀중품들을 솜씨 있게 쌓아올린다. 추장은 의기양양하게 거닐며 이웃 추장들에게 선물할 많은 귀중품을 자랑한다.

 

살코기, 건어물, 생선기름, 가죽, 담요 등등. 이웃 추장들은 이 귀중품 더미를 헤아려보며 일부는 기가 죽고, 다른 일부는 선물이 별게 아니라고 빈정댄다. 결국에는 추장이 주는 선물을 받아가지고 각자 마을로 돌아온다. 선물에 기가 죽은 축들은 초대한 추장의 권위를 인정해 복종하게 되고, 그렇지 않은 축들은 받은 선물보다 더 많은 귀중품들을 쌓아놓고 답례 포틀래치를 열어 권위의 경쟁을 하는 것이다.

 

어떤 포틀래치에서는 쌓아놓은 귀중품들을 선물로 나눠주는 대신 불을 지르거나 땅에 쏟아버림으로써 자기의 부를 엽기적으로 과시했는데, 이것이 지나쳐 거주하던 집을 불질러버린 일도 있었다.

 

베네딕트는 이러한 포틀래치가 콰키우틀족 문화의 특징을 보여주는 과대망상적 생활양식의 한 면이라고 생각했지만, 문화인류학자 마빈 해리스는 포틀래치가 이들 사회의 경제적·생태학적 조건들에 의한 결과임을 주장한다. 곧 콰키우틀족의 선물 공세는 생산력이 불균등한 종족 사이 교환경제의 일환으로, 부의 생산과 분배를 재구조해주는 메커니즘이라는 것이다.

 

프랑스의 인류학자 마르셀 모스는 해리스의 분석에 한 가지를 덧붙인다. 이 과장된 선물의 무분별한 소비와 교환, 그리고 어이없는 귀중품들의 파괴가 의미하는 것은, 선물을 준다는 것은 곧 주는 자의 우월함을 증명하고, 그가 더 중요하며 지위가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곧 답례 포틀래치를 열지 못하고 선물을 받기만 하는 것은 예속된다는 것, 종복이 된다는 것을 의미함으로써 그들 사이에 자연스레 위계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에스키모인들의 격언에 “채찍이 개를 만들듯 선물은 노예를 만든다”는 말이 있다.

 

얼마 전 폭로된 ‘삼성 X파일 사건’에 등장하는 ‘떡값’이 노리는 것도 바로 그것이다. ‘떡값 선물’이 정치인, 검사, 언론인 등을 삼성의 이익에 봉사하는 ‘노예’로 삼자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직접 떡을 주든지, 아니면 받은 떡값으로 떡이라도 사먹었으면 쌀을 생산하는 농민, 떡방앗간, 떡장수들에게 부스러기라도 떨어져 국민경제의 선순환 구조에 약간이라도 도움이 되었을 텐데, 낙원동 떡골목 경제가 조금도 미동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그 떡값 부동산 투기하는 데 쓴 걸까?

 

추석에 맞춰 유명 백화점들이 앞다퉈 명품 고가 추석 선물들을 내놓고 있다. 300만원짜리 굴비 세트에서부터 1500만원짜리 샤토무통칠드 와인 세트, 한병에 7천만원인 ‘매캘런 1926’ 몰트 위스키까지 벌린 입을 다물 수가 없다.

 

인디언 사회의 포틀래치 행태를 빌리자면, 이 선물들은 어디로 가 누구를 또 노예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태연히 한잔에 290만원짜리 폭탄주를 돌릴 천민자본가에게 안기는 것인지?

 

 

 

[제577호]양주 포틀래치 : 문화일반 : 문화 : 뉴스 : 한겨레21 (hani.co.kr)

 

양주 포틀래치

 

h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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