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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독서

물질파, 육체파, 정신파

by sperantia 2022. 2. 25.

[펌]

“잘생기고 부유하면 인스타그램, 불행하고 가난한데 할 이야기가 많으면 페이스북, 그냥 아무것도 아니면 트위터.”

정연욱의 『구독, 좋아요, 알림 설정까지』(천년의상상 펴냄)를 읽다가 헛웃음이 터져 나온 대목입니다. 저자는 “젊은 층의 소셜 미디어 사용을 한마디로 정리한 글”이라며 “일반화할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사실 이를 뒷받침하는 거친 통계가 존재합니다. 조귀동의 『세습 중산층 사회』(생각의힘 펴냄)를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2018년 20대 400명을 대상으로 분석했더니, “소득이 높아질수록 사용 빈도가 늘어나는 SNS는 인스타그램과 네이버 밴드”였습니다. “인스타그램의 점유율은 각각 월 소득 150만 원 미만은 17.8퍼센트, 월 소득 150만~249만 원은 17.2퍼센트인데 월 소득 250만 원 이상 집단에서는 22.9퍼센트로” 뛰었습니다.

이 책을 추천하려고 몇 번이나 만지작거리다가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저자가 총 16개월간 20대, 30대 소셜 미디어 인플루언서 325명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고서 펴낸 ‘유명해지고 싶은 2030 인류학 보고서’의 내용이 너무나 적나라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입니다.

* 어느 ‘페북 현자’의 삶

“페북 현자”로 소개되는 이우성(가명). 시도 때도 없이 명품 ‘언박싱’을 할 만한 재력도 없고, 대중이 원하는 빼어난 외모도 가지지 않은 그는 페이스북에서 발 빠르게 정치, 시사 논평을 하는 일로 유명해지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가진 자원이 없고 경험도, 식견도 짧은 30대 초반의 그가 유명해지는 일이 쉬울 리가 없지요.

그는 자신이 유명해지기 위해서 두 가지를 선택합니다. 첫째, 진영을 확실히 골랐습니다. 편만 잘 들면 정보가 틀리고 논리가 엉성해도 자기 진영에서 방어해주니까요. 이 혹독하고 혼란스러운 ‘정치의 계절’이 지나고서, 운이 좋으면 역할모델(‘청년 정치인’) 몇몇처럼 청와대 행정관이라도 할 수 있을 가능성도 생기니 나쁘지 않은 전략입니다.

둘째, 자신보다 유명한 사람을 ‘저격’하는 일입니다. “따라 부르기 쉬워야 히트곡이 되는 것처럼, 페북 글도 공격성, 적대감을 고취하는 글이 잘 먹히니까요.” 그렇다고, “너무 대놓고 물어뜯으면, 나중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페북 현자’는 “팬들에게 뒤처리를 맡기는 방식을 씁니다.”

이런 방법을 ‘구멍 파기’라고 한답니다. “심증만 주고 냄새만 풍기면, 아니나 다를까, 팬(이라고 쓰고 그는 ‘사냥개’라고 읽습니다)들이 구멍에 머리를 박고 물어뜯으니까요.” 그들은 “목표 타깃의 실명은 물론 구체적인 행각까지 댓글로 소상히 달면서 짖죠.” 여기서 핵심은 그는 “최초 기획자일 뿐, 직접 물어뜯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런 사냥개를 “수백 마리” 정도 키우고 있습니다. 그들 사냥개의 “상상력과 실행력을 자극하면 게임 끝.” “그들은 예측한 대로 반응하는 충직한 존재들”이니까요. 쓴웃음이 나왔습니다. 실제로, 이우성 같은 ‘페북 현자’에게 저격도 당해 보고, 나아가 그 사냥개들한테 물어뜯겨도 봤으니까요. (유쾌한 경험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 이우성의 삶도 고단합니다. 인정을 받고 싶어서 조바심을 내면서 시도 때도 없이 페북에 글을 올리는 일에서 삶의 균형을 찾기는 쉽지 않으니까요. 예를 들어, 그는 어느 날 감사실로 불려갑니다. 감사실 책상에는 그가 업무 시간에 페북 현자로 활동한 수많은 증거가 놓여 있습니다. 그는 직장이라도 제대로 다닐 수 있을까요?

* 물질파 >>> 육체파 >>>>> 정신파

이우성뿐만이 아닙니다. 정연욱은 소셜 미디어 인플루언서를 ‘물질파’ ‘육체파’ ‘정신파’로 나눠서, 각자 사는 방식을 이렇게 생생하게 전합니다. 짐작하다시피, 물질파는 남과 ‘다른’ 소비로 자신을 과시하는 인플루언서입니다. 육체파는 말 그대로 육체 즉 미모와 몸매 등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는 인플루언서죠. 정신파는 앞에서 언급한 이우성 같은 이들이고요.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대목은 물질파, 육체파, 정신파의 우열입니다. 최근 가품을 동원하면서까지 부유한 척했다가 대중으로부터 외면받은 한 여성 인플루언서가 있었죠? 한 지인은 이 인플루언서의 추락을 놓고서 “미모, 지성, 자본 중에서 돈(자본)은 가장 따라 하기 힘든 영역인데…” 하면서 안타까워했었습니다.

맞습니다. 정연욱이 이 책에서 깊이 파고들지는 않았습니다만, 육체파나 정신파가 유명해지길 원하는 진짜 이유는 결국 ‘물질’ 때문입니다. 그들도 유명해져서 물질파가 하듯이 명품을 들고서 좋은 식당과 호텔을 들락거리고, 비행기 퍼스트 클래스를 타고서 남들이 가보지 못한 곳에서 자기 취향을 뽐내고 싶어 하죠.

셋 가운데 (사실은 물질파 놀이를 감당하지 못해서 카드빚에 허덕이는 게 아니라면) 물질파의 삶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들 물질파는 “그저 온라인은 온라인의 삶이라며 경계를 뚜렷하게 긋고” 삽니다. 왜냐하면, “이미 배부른 그들은 온라인에서 생계와 관련된 활동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반면에, 육체파와 정신파는 “온라인의 다양한 활동을 오프라인에 긍정적인 효과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삼아야” 합니다. 육체파가 “나의 몸은 생계의 최전선”이라고 여기며 광고주의 요구에 “얼마 주실 거예요”와 “벗으라면 벗겠어요”를 되뇌는 이유도, 정신파가 끊임없이 미디어 노출을 갈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안타깝지만, 정신파는 실패할 가능성이 큽니다.)

*

이 책을 단순히 20대, 30대 인플루언서의 범상치 않은 삶을 보여주는 작업으로만 간주해서는 곤란합니다.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볼까요? 인구학적으로 보면, 그러니까 인구수로만 놓고 보면 갈수록 쪼그라드는 젊은 세대가 이번 선거에서 갑작스럽게 중요한 변수로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려면 소셜 미디어가 신문, 방송 같은 기성 미디어를 대체하고 공론장을 지배하는 현실, 그런 소셜 미디어의 중요한 행위자가 20대, 30대라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그들과 상호 작용하면서 소셜 미디어를 들썩거리게 하는 인플루언서의 존재를 빼고서는 지금 공론장이 작동하는 방식을 이해하기 어렵죠.

읽다 보면 헛웃음과 쓴웃음이 반복적으로 나오는 이 인류학 보고서는 지금 대한민국, 아니 전 세계 ‘주목 경제’의 플레이어(주체)가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여줍니다. 사랑을 ‘좋아요’로, 인정을 ‘구독’으로, 약속을 ‘알림 설정’으로 대체한 소셜 미디어와 그곳에 몰입하는 이들은 세상을 앞으로 어떻게 바꿔놓을까요? 이 책에 그 실마리가 있습니다.

*

<기획회의> 553호(2022년 2월 5일)에 기고한 ‘이 주의 큐레이션’. 이번에는 정연욱의 『구독, 좋아요, 알림 설정까지』를 소개했습니다. 글 중간에 잠시 언급한 한 지인의 코멘트는 페이스북 친구 이 선생님께서 최근 한 인플루언서를 놓고서 짧게 언급한 내용입니다.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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