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석(갓돌·curb)은 18세기 런던에서 마차가 달리던 차도와 인도를 분리하기 위해 처음 설치되었고, 이후 유럽과 미국의 다른 도시로 전파되었다. 자동차의 등장 이후, 연석은 운전자에게는 차도의 경계를, 보행자에게는 심리적 안정감을 줬다.
그런데 1930년대에 현대식 휠체어가 발명되고 나니 연석이 문제가 되었다. 휠체어로는 높은 연석을 내려가기도, 올라가기도 어려웠다. 장애인들은 연석을 깎아서 경사로를 만들어달라고 청원했지만, 이들의 요구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공무원은 없었다. 1970년대 초 장애 인권 운동가 마이클 파초바스(Michael Pachovas)와 동료들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시 도로의 연석을 망치로 내려치고 콘크리트를 부어서 경사로를 만들었다. 이 일이 있은 뒤인 1972년에 버클리시가 첫 공식 휠체어 경사로를 만들었다. 이어 도로 수백 곳에 경사로가 생겼다.
휠체어용 경사로를 위해 도로를 부수고 세금을 쓰는 것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장애인이 아닌 일반인들이 휠체어 경사로를 이용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보행기를 한 노인, 유모차를 끄는 부모, 시장 카트를 끄는 주부, 여행 가방을 끌고 다니는 여행자…. 인권 운동가 앤절라 블랙웰(Angela G. Blackwell)은 이렇게 사회적 약자를 위한 조치가 다른 사람에게도 혜택을 주는 현상을 ‘커브컷(curb-cut) 효과’ ‘연석 경사로 효과’라고 명명했다. 손놀림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 개발한 전동 칫솔을 일반인도 애용하고, 장애인을 위해 설치한 엘리베이터를 노인이나 임신부가 이용하며, 자전거 운전자를 위한 도로를 만들었더니 보행자 사고가 줄어든 것도 같은 효과였다.
휠체어가 접근하기 힘든 것은 연석이나 계단만이 아니다. 휠체어를 타면 발이 놓인 부분이 튀어나와서 사물에 바짝 붙기 어렵고, 시야가 낮아진다. 따라서 휠체어를 탄 장애인에게 ATM 기계나 키오스크(무인 주문기)가 매우 불편한 기계가 될 수 있다. 이런 기계를 휠체어 친화적으로 개량한다면 ‘커브컷 효과’로 또 다른 누군가가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도시 전체가 휠체어 친화적으로 바뀐다면 모두가 생활하기 편한 도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홍성욱의 과학 오디세이] [3] 커브컷(curb-cut) 효과 (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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