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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테크/경영경제보고서

“과잉부채” 대 “과잉저축”…금리는 왜 이토록 낮을까_150412

by sperantia 2020. 10. 2.

('15년 기사긴 한데 현상황을 잘 나타내주는 듯...)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한마디로 축약하면 ‘과잉부채’라고 할 수 있다. 이 과도한 빚은 다 어디서 왔을까? 누군가로부터 빌렸고, 누군가가 빌려준 것이다. 이 과잉부채는 따라서 누군가의 재산이다. 과잉부채의 맞은편에는 ‘과잉저축’이 존재한다.

 

과잉부채는 왜 발생하였는가? 금리가 과도하게 낮았던 탓이라고들 한다. 금리가 높았다면, 부채가 이렇게까지 많이 늘어나지는 않았을 수 있다. 그러나 저금리가 문제의 근원을 모두 설명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사람들이 빚을 늘렸을 때에는 동기가 있기 마련이다. 금리가 좀 높더라도 이자 부담보다 상대적으로 더 큰 효익이 기대된다면 돈을 빌린다. 그 효익 중 하나는 삶의 질 향상이다. 빚을 내서 소비를 늘리는 것이다. 벌이가 변변치 않을 때 이런 일이 생긴다.

 

예를 들어 1년에 소득이 5% 증가했고, 물가는 2% 올랐다고 가정할 때 실질소득은 그 차이인 3% 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증가한 실질소득으로 우리는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 그런데 미국 의회예산국(CBO)에 따르면, 1979년 이후 32년 동안 미국 중간계층을 구성하는 인구 60%의 실질소득은 누적으로 16%밖에 늘지 않았다. 가장 잘사는 나라 중 하나라는 미국의 현실이다. 반면 상위 1%의 실질소득은 174% 증가했다.

 

이런 분배구조 속에서 통화정책을 건전하게, 금리를 제법 비싸게 운영했다면 미국의 경제성장은 훨씬 더뎠을 수 있다. 소득만큼 소비도 제자리를 면치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건을 더 살 사람이 없으니 투자를 늘릴 기업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중산 서민들의 정치적 불만은 훨씬 커졌을 수 있다. 삶의 질이 하나도 개선되지 않는 환경에서 정부를 좋아하기는 어렵다. 그러니 사람들이 빚을 내서라도 삶의 질을 높이도록 유도하고, 경제와 일자리가 빚으로 성장하도록 통화정책을 운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빚은 이제 주거소비로까지 확산된다. 물가 오른 걸 빼고 나면 늘어난 벌이가 거의 없는 중산 서민들이 돈을 모아 내 집을 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 정부가 빚으로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돈을 싸게, 많이, 쉽게 빌릴 수 있게 만들었다. 빚내서 집을 산 사람에게는 세금도 깎아줬다. 삶의 만족도를 향상시키고, 주택경기도 부양할 수 있는 일거양득의 정책이었다. 자연히 사람들은 은행으로 몰려갔다.

 

그러다 보니 집값이 뛰어올랐다. 똑같은 집을 사는데도 훨씬 더 많은 빚을 내야 했다. 대신 일찌감치 대열에 뛰어든 사람들은 목돈을 벌었다. 주변 사람들이 부자가 되자 빚내는 사람이 더 늘었다. 집값은 더 오르고, 부채는 더 증가하는 순환고리가 형성됐다. 그리고 이 사람들이 일으킨 부채는 모두 주택의 시가총액, 자산으로 변신해 가계 대차대조표에 표기됐다.

 

이들에게 비싸게 땅을 판 사람들은 저축이 늘었다. 그 돈으로 다시 땅을 사서 더 비싼 값에 팔았다. 부채와 똑같은 속도로 저축이 증가했다. 집을 사지 않은 사람들은 더 높은 임대료를 물게 됐다. 그래서 땅을 가진 사람들의 저축은 또 늘어났다. 이 저축은 집을 사려는 사람에게 빌려주었다. 그래서 주택 구입자의 소득은 이자의 형태로 땅 판 사람에게 한번 더 넘겨졌다.

 

그리고 이 무형의 자산, 빚과 함께 불어났던 주택의 시가총액이 붕괴되고 말았다. 반면 부채는 그대로 남았다. 대차대조표가 한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대차대조표 불황이 발생했다. 부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은행이 대출금을 떼일 형편이 되었기에 그 은행에 예금을 맡긴 저축자들의 자산도 무너질 위험에 처했다.

 

이때 정부가 개입했다. 그대로 뒀다가는 은행시스템이 연쇄적으로 붕괴되고 경제의 혈류는 괴사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모든 예금의 지급을 보장했다. 은행에는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부도난 빚은 상당부분 국가가 떠안았다. 대신 저축자들은 온전히 구제됐다.

 

그렇게 6년 반가량이 지났다. 미국 정부가 발행한 10년 만기 국채의 금리는 2%도 되지 않는다. 역사상 처음으로 스위스 정부가 10년 만기 국채를 마이너스 금리로 발행했다. 과거에는 상상도 못할 저금리다. 중앙은행이 인위적으로 과도한 저금리 정책을 쓴다고 비난한다. 일부에서는 인플레이션을 걱정하고, 또 한편에서는 거품을 우려한다. 그러나 물가는 여전히 바닥을 기고 미국의 성장률은 연간 2%를 약간 넘을 뿐이다. 금융위기 이전에는 3% 정도 성장하면 ‘보통’이라고 했었다. 선진국들 중에서 사정이 가장 낫고 회복이 가장 빠르다는 미국의 경제가, 이른바 ‘초저금리 정책’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다.

 

초저금리는 어쩌면 인위적인 왜곡이라기보다는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과거와는 정반대로, 지금은 과잉부채와 과잉저축이 저금리의 원인이 됐다. 한쪽에서는 아무리 금리가 싸도 빚과 소비를 더 늘리기 어렵게 됐고, 반대편에서는 아무리 이자를 박하게 준다 하더라도 돈을 맡길 수밖에 없다.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지난달 연설에서 미국의 실질 균형 이자율이 0%라고 말했다. 금리가 그보다 높으면 투자를 하지 않고 저축을 한다는 뜻이다. 그러면 경제는 침체된다. 미국 경제의 체력을 봐서는 실질금리가 1.75%는 돼야 정상이지만, 금융위기의 상처가 길어져 생긴 현상이라고 봤다. 그래서 금리를 낮게 제공해 주면 시간이 지나서 정상화될 거라고 했다.

 

그러나 그 대신에 미국 중앙은행 지휘봉을 잡을 뻔했던 로런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이미 금융위기 이전부터 있었던 구조적인 현상”이라고 했다. 그래서 불황은 장기화, 영속화될 수도 있다고 봤다. 저금리만으로는 안 되고, 재정투자를 늘려 수요와 생산성을 동시에 높이자고 한다. 그러나 이미 과거부터 계속돼온 원인구조와 관련해 ‘다중으로 왜곡된 분배’는 논하지 않는다.

 

 

 

 

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686519.html

 

“과잉부채” 대 “과잉저축”…금리는 왜 이토록 낮을까

빚으로 경제 지탱한 통화정책 주택 시가총액 붕괴, 부채는 남아 과잉부채·과잉저축이 저금리 원인 수요과 생산성 동시에 올려야

ww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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