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에 썼던 연간 전망에서 ‘기묘한 이야기’라는 타이틀로 글을 적었었죠. 여러가지 기묘한 이야기들이 존재하지만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시장과 연준의 이야기였답니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폭증하자 연준은 금리를 인상하려고 하는데요, 과거 80년대와 같이 마구잡이식으로 금리를 인상하면 경기가 무너져내릴 수 있죠. 최대한 경기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그리고 금융 시장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아.. 않으면서라는 표현보다는… 되도록 최소한의 충격을 주면서 금리를 인상하여 이를 통해 마구 치솟는 물가를 잡으려고 하는 것이죠.
아니.. 물가 잡다가 경기 죽으면 어케하냐.. 라고 얘기하지만.. 여기에 대해서 파월 의장은 이렇게 말하죠.. 경기가 좋아서 임금이 오른다.. 이는 결국 성장을 만들어내는 호재이지만.. 그런 임금 상승세보다 물가 상승세가 더 높다면… 지금 그런 상황인데.. 이게 연준이 물가를 잡으려는 이유다.. 라구요.. 네, 그냥 내깔려놓아두면 임금이 오르는 이상으로 물가가 오르게 됩니다. 그럼 사람들은 일을 할 이유가 없죠. 노동의 밸류가 앉은 자리에서 계속해서 낮아지게 됩니다. 성장을.. 아니… 지속가능한 성장을 만들어내려면 결국 물가의 안정이 필수인 겁니다. 이렇게 비유하면 될까 싶은데요… 수술을 해야 회복이 가능한 거죠. 수술은 정말 하기 싫은데.. 아픈 것도 싫고 몇 주 동안 병원 신세 지는 것도 싫고 정말 수술은 싫은데 어쩔 수 없이 물가 잡기 위한 수술에 들어가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연준이 금리 인상 확률을 크게 높이고 있는 거죠. 연준의 그런 의지를 확인했기에 단기 금리가 빠르게 급등했고 향후 기분(경기)이 좋지 않으실 것을 대비해서 장기 금리가 내려온 겁니다. 그럼 장단기 금리가 역전되는 지금의 상황이 현실화되죠. 지난 토요일 새벽 미국 2년 금리는 2.46%을 찍었구요.. 10년 금리는 2.39%를 기록하면서 장단기 금리차가 종가 기준으로 제대로 역전이 되었답니다. 크게 의미를 두지 말라는 갑론을박이 있지만(제 에세이에서도 많이 다루어드렸구요) 적어도 즐거운 시그널은 아니라고 봅니다.
아무리 그래도 수술을 할 때… 아주 정교하게 집도해서 피해를 최소화하는 게 중요하죠. 집도하는 방법은 최대한 성장을 건드리지 않는 쪽에 정교하게 매스를 대는 방법도 있을 거구요.. 컨디션이 좋은 상황에서 딱 타이밍 잡아서 수술을 하는 방법도 있을 겁니다. 몸 상태가 말이 아닌데 마구잡이로 수술을 하는 것보다는 좀 컨디션이 올라왔을 때 밀고 들어가는 게 좋겠죠. 경기의 컨디션을.. 그리고 금융 시장의 컨디션을 연준이 컨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겁니다. 그래서요.. 주식 시장이 좋으면 연준의 금리 인상 확률이 높아지구요.. 주식 시장이 흔들리면 연준의 금리 인상 확률이 낮아지는 기묘한 현상이 이어집니다. 이게 참 독특한 것이… 금융 시장은 연준이 성장 둔화를 겁내는 겁쟁이에 불과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기에 조금만 울지 않고 견디면 새가슴 연준은 물러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구요… 연준은 금융 시장이 울지 않고 견디고 있으니 괜챦은 줄 알고 계속 금리 인상 횟수를 높여가고 있죠. 경기 둔화, 혹은 금융 시장의 혼란이 가장 두려운 스토리인데… 이들이 잘 버텨주면.. 컨디션이 나쁘지 않으면 굳이 수술을 미룰 이유가 없습니다. 기회는 챤스인 만큼 언능 수술을 해서 끝을 내주는 것이 좋겠죠. 여전히 살아있는 주식 시장의 “밀리면 사자(Buy the Dip)”의 심리를 보면서 연준은 물가 잡기에 열을 올리는.. 금리 인상 횟수를 밀어올리는 느낌입니다.
Buy the Dip 심리가 만들어진 이유에 대해서 잠시 생각을 해보죠. 밀리면 사자.. 라는 주식 시장의 심리.. 혹은 학습 효과는 어떻게든 주가는 오를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확신 속에서 탄생하게 됩니다. 주식은 보통 경기가 좋을 때 오르고 경기가 둔화될 때 고전하는 양상을 보이곤 하죠. 그런데요… 적어도 2020년 코로나 사태 이후에는 제대로 확인시켜줬습니다. 경기가 아주 박살이 나서 주저앉고 있음에도 주식 시장은 역대급 급등세를 보였던 것이죠. 연준의 돈 퍼주기와 미국 행정부의 재정 부양책이 쌍끌이로 주식 시장에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죠. 경기가 좋아도 주가는 오르고… 경기가 좋지 않아도 주가는 오릅니다. 그럼 결국 주가는 오를 수 밖에 없죠.
그런데요.. 굳이 따져보면은.. 경기가 좋을 때 주가가 오르는 경우는… 실물 경기가 좋아지고… 일을 하면서 생산이 크게 늘어나고.. 이를 통해 돈을 벌어서 주가가 오르죠. 사람들이 윤택해지는 이유가 일자리가 넘치고 임금이 오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요… 경기가 좋지 않은데도 주가가 오르는 케이스를 생각하보면요.. 일자리는 없는데.. 일은 하지 않는데 주가가 급등하는 겁니다. 이건 그야말로 돈 퍼주기로 쏟아져 나온 돈이 어디에 많이 고이는가가 핵심이 되는 건데요… 대부분 성장주에 가서 고이게 되죠. 밈 주식이나 아크 역시 여기에 들어갈 겁니다. 이렇게 돈이 고이는 곳의 자산 가격이 급등을 하게 되니 투자자들의 소득이 크게 늘어날 수 있을 겁니다. 네.. 경기가 좋을 때는 노동이 늘어나면서 소비가 늘어나겠지만… 경기가 좋지 않을 때는 돈이 풀리면서 소비가 늘어납니다.. 어느 쪽이 더 좋을까요? 아무래도 편한 쪽은 후자가 아닐까요? 그래서 금융 위기 이후에 시장이 느껴왔던 명제는 호재는 호재… 악재 역시 호재.. 라는 스토리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이번에는 물가와 자산 시장의 이야기를 조금 더 이어가볼까 하는데요… 지난 해 하반기부터 이어졌던 물가 상승에 대해 많은 분들은 공급망의 이슈 때문이라는 코멘트를 가장 많이 주시곤 하죠. 개인적으로 동의하는 부분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많다고 보는 것이요… 지금 미국의 소비 수요는 정말 탄탄합니다. 미국의 소비가 탄탄한 이유.. 이런 거죠. 우선 트럼프 행정부 하에서 2020년 4월 2.2조 달러… 그리고 2020년 12월에 9천억 달러를 재정 부양을 통해 주었구요..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지난 해 3월에 1.9조 달러를 추가로 공급해주게 되죠. 경기 부양을 위해 이 정도의 경기 보조금이 쏟아져나온 겁니다. 이런 돈들은 단순히 일자리 창출에 들어간 게 아니라 직접 개인들에게 수표로 지급되었죠. 개인들에게 소비를 좀 하시라고 직접 지급된 자금도 상당한데요… 그 외에도 각종 보조금이 나갑니다. 대표적인 것이 추가 실업 수당이 있구요.. 자녀 특별 공제라고 해서 자녀 1인당 월 300불 정도의 자금을 추가로 지원해주었죠. 이런 지원금은 정부 차원의 지원이었구요…. 중앙은행은 무제한 양적완화를 통해 금리를 바닥에 붙이고 자산 가격을 밀어올리는데 큰 도움을 줍니다.
그럼 이런 생각을 해볼 수 있죠. 각종 보조금이 쏟아져나오고.. 자산 가격이 크게 상승합니다. 노동 시장이 이례적으로 뜨거워요… 일자리는 넘치는데 일을 하려는 사람이 모자랍니다. 그럼 임금이 올라가겠죠. 전화가 계속 올 겁니다. 이 쪽으로 넘어와서 일하시라는 이직 요청 전화가요.. 그럼 개인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요? 네.. 자산 가격도 많이 올랐고 보조금도 많이 쏟아졌죠.. 그리고 임금도 오르고 있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다른 회사를 가도 되죠. 그럼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이게 지금 미국의 대퇴사붐을 만들고 있습니다. 기사 하나 읽고 가죠.
“미국에서 지난해 11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노동자가 450만명으로 역대 최다 기록을 세웠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충격으로 인한 노동시장 격변이 지속되는 가운데 퇴직을 택하는 노동자 수가 연달아 최대치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같은 기간 미국 기업들의 구인 건수는 여전히 1000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돼 노동력 부족 현상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노동부가 4일(현지시간) 공개한 지난해 11월 구인·이직보고서(JOLTS)에 따르면 11월 미국의 퇴직자 수는 453만명으로 집계됐다. 전월 대비 8.9% 급증한 것으로 미국 전체 노동자의 3%에 해당한다. 미국의 전체 노동자 100명 중 3명이 한달 새 직장을 퇴직하거나 새로운 직장으로 이직했다는 뜻이다. 2000년 12월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이후 가장 많은 사람들이 한달 새 퇴직했다. 미국에서는 이미 지난해 4월과 8월, 9월 퇴직자가 역대 최대치를 갈아치웠다. 1년 새 역대 최다 퇴직자 기록이 네 번이나 바뀐 것이다.
미국은 2020년 봄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봉쇄의 영향으로 2000만명이 일자리를 잃는 등 노동 시장이 심각하게 위축됐다. 하지만 지난 해 초부터 경제가 본격적으로 회복되기 시작하면서 구직자에 비해 기업들의 구인 건수가 훨씬 많은 구인난이 벌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많은 노동자들이 더 나은 일자리를 찾아 기존 직장을 그만두는 이른바 ‘대퇴사(Great Resignation)’ 현상이 나타났다.”(경향신문, 22. 1. 5)
네.. 미국의 대퇴사붐 얘기가 나오고 있죠. 역대급으로 많은 사람들이 퇴사를 하는데 미국의 소비는 역대급으로 가장 뜨겁습니다. 미국의 개인소비지출 규모는 이미 코로나 이전의 지출 규모를 훌쩍 넘어선 상태죠. 생산 활동은 줄어드는데 소비는 크게 폭발하는 구조인가요? 그럼 생산활동이 부족한 만큼 생산이 안되는 것이니 공급 부족이 나타나는 것도 무리는 아닐 듯 합니다. 이런 공급을 중국의 공급이 메우고 있죠. 미중 무역전쟁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대미 무역 흑자는 상당히 크게 늘어났구요… 중국의 무역 수지는 사상 최대 수준의 흑자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달러가 그렇게 강함에도 불구하고.. 그 강한 달러를 직접적인 무역을 통해 역대급으로 벌어들이고 있으니 중국의 위안화가 달러 강세 기조에도 불구… 미국 금리 인상 속도가 크게 빨라질 것임에도 불구… 계속해서 위안화 강세가 이어지고 있죠. 그럼 중국의 무역 흑자는 크게 늘어나게 되니.. 그 반대편인 미국의 무역 적자는 더욱 더 커지게 될 겁니다. 그 적자만큼을 국채를 발행해서 메우는 구조가 되고… 그 국채에 대한 이자 지급을 늘려야 하는 만큼 미국의 재정 적자 역시 급증할 수 밖에 없겠죠.
자.. 미국 재정 및 무역 적자 얘기는 나중에 해보도록 하구요… 애니웨이, 미국의 소비는 제대로 폭발한 상황입니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전세계는 만성적인 소비 부족에 시달렸죠. 수요가 부족한 만큼 공급을 함부로 늘릴 수가 없습니다. 만성적인 수요 부족이라고 한다면… 잠시 수요가 뜨거워지더라도 기업들 입장에서는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 밖에 없죠. 단기 수요 폭발을 보면서 함부로 생산을 늘리게 되면… 어느 한 순간에 과잉 생산이 되어 버릴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럼 수요가 뜨거워져도 공급이 그만큼 빠르게 튀어오르지를 못합니다. 그럼 수요와 공급의 갭이 벌어지는 기간이 길어질 것이구요… 수요는 넘치는데 공급이 부족하니.. 그리고 그 기간이 길어지니 물가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겠죠. 네.. 다 좋은데 갑자기 공급이 모자라는 것이 문제라기보다는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있는데.. 이걸 따라가지 못하는 공급이 문제인 겁니다. 물론 이외에 러-우 전쟁 등과 같은 원자재 수급 이슈는 별도로 고려해야 하는 요인이 되겠지만요..
미국의 소비 폭발에 기여하는 것이 재정 지출과 저금리, 그리고 자산 가격의 상승이라고 한다면… 자산 가격이라는 것이 소비를 자극하고… 이를 통해 물가를 자극하는 로직 역시 고려해볼 수 있겠죠. 자산 가격이 계속해서 올라간다면 사람들은 물가 상승률보다 낮은 임금을 바라보면서 일을 하게 될까요… 아니면 투자를 통해 수익을 내려고 노력하게 될까요? 후자라면 Buy the Dip은 현실화된 신화가 되는 겁니다. 그리고 Buy the Dip은 주가가 오른 만큼… 더 자극이 되면서 주식으로 자금의 쏠림을 추가로 만들고… 이는 인플레이션을 보다 강하게 만들어낼 수 있죠. 네.. 자산 가격하고 인플레이션이 이런 연관 관계를 갖고 있다면 연준이 자산 시장이 조금 흔들린다고 해서… 물가 잡기를 포기할 수는 없을 겁니다. 자산 시장의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물가를 잡는 쪽으로 포석을 깔아가려고 하겠죠. 그래서 서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자산 시장을 보면서 연준이 금리 인상의 속도를 조절한다고 했던 겁니다.
자산 시장이 소비를 자극한다.. 그래서 물가를 자극한다… 과연 현실적일까… 물론 저 역시 지금의 소비에서 자산 가격의 상승이 소비를 자극했던 비중만큼을 발라낸 데이터를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상당 수준 연관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과거 2000년 초 IT버블 당시 주가의 상승이 소비를 자극했던 케이스를 당시 연준 의장이었던 그린스펀이 했던 바 있죠. 당시 기사를 인용하면서 주말 에세이를 줄입니다.
“앨런 그린스펀 미 연준리(FRB)의장은 13일 "미국에서는 아직도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고 있다"며 "만약 FRB가 금리를 추가로 올리지 않으면 이같은 초과수요는바로 인플레이션을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린스펀은 이날 상원 금융위원회 청문회에 출석,"최근 나스닥을 중심으로 증시가 동요하고는 있지만 주식투자로 돈을 번 소비자들의 수요는 여전히 공급을 뛰어 넘는 수준"이라며 조만간 또 한차례 금리를 인상할 것임을 강력히 시사했다.”(한국경제, 2000. 4. 14)
네.. 날씨 정말 좋네요. 남은 주말 뜻 깊게 보내시고 다음 한 주도 홧팅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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