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일 미국 국채 금리가 소폭 반등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10년 기준으로 1.5%수준을 하회하고 있죠. 5.0%로 거의 서프라이즈 수준의 소비자 물가지수를 나타냈음에도 금리가 이렇게 고개를 푸욱 숙이고 있는 것은 지금의 물가 상승이 일시적일 것이라는 데 대해 채권 시장도 상당 수준 동의를 하기 때문일 겁니다. 지난 에세이에서 성장과 물가, 그리고 테이퍼링에 대한 말씀을 드렸었죠? 오늘은 테이퍼링 부분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죠. 테이퍼링이라는 출구전략의 한 방편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전반적인 중앙은행의 출구 전략 히스토리를 살펴보는게 필요할 듯 합니다.
지난 08년 금융 위기 당시 버냉키 당시 Fed연준 의장이 헬기에서 돈을 뿌린다는 얘기를 하면서 양적완화를 선언했을 때 미국 의회를 비롯, 수많은 학자들은 거대한 인플레이션이 올 것을 우려했었죠. 그렇지만 워낙 상황이 좋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이 양적완화를 받아들였답니다. 그렇게 양적완화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강했기에 조금이라도 회복의 징후가 나타나면 거대한 인플레이션에 대한 두려움을 언급하면서 양적완화의 종료를 주장했었죠. 1차 양적완화는 09년 3월에 시행된 이후 10년 4월에 종료됩니다. 그리고 종료된 직후 10년 5월부터 그리스 위기가 터졌고 미국 경제는 더블딥 위기에 놓이게 되죠. 그리고 10년 11월에 2차 양적완화를 선언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2차 양적완화는 10년 11월부터 11년 6월까지 이어졌는데요, 2차 양적완화가 종료된 이후 11년 8월부터 유럽 2차 재정 위기와 함께 글로벌 경기의 전반적인 둔화 양상이 나타났죠.
문제는 당시 국제유가의 큰 폭 상승으로 인해 물가 상승 압력이 높았다는 겁니다. 성장은 주저앉는데 물가는 높은 수준을 유지한 것이죠. 버냉키의 회고록인 “행동하는 용기”에서 보면 당시 추가 양적완화를 추진하는데는 너무나 반대 여론이 강했기에 어쩔 수 없이 추가로 돈을 뿌리는 것이 아니라 단기의 자금을 땡겨서 장기 채권에 쏟아붓는 오퍼레이션 트위스트를 단행하게 되죠. 하지만 이 정도로도 답이 나오지 않자 2012년 9월 3차 양적완화에 돌입합니다. 그리고 3차 양적완화는 기존의 1,2차처럼 한 번에 종료하지 않구요… 실제 경기가 회복 사이클에 들어선 것을 확인한 이후… 조금씩 조금씩 줄여나가기 시작하죠. 네.. 양적완화를 조금씩 줄여나가는 것을 우리는 테이퍼링이라고 부르죠.
테이퍼링을 단행한 이후 시장은 한 번 더 큰 충격을 받게 되는데 그게 바로 테이퍼 쇼크, 혹은 테이퍼 탠트럼이라는 충격이 바로 그겁니다. 13년 5월 테이퍼 선언 이후 13년 9월 정도에는 실제 국채 매입의 축소가 있을 것이라 예상했는데… 그게 늦춰지게 되죠. 그러면서 14년 1월부터 실제 테이퍼링에 돌입, 양적완화를 조금씩 줄여나가면서 14년 11월에 3차 양적완화를 완전히 종료하게 됩니다. 그리고 Fed는 이제 시장과 어느 정도 소통이 되어있었던 만큼 기준 금리 인상을 논하게 되죠. 15년 초 뉴스를 보면 다음과 같은 기사들이 회자되었답니다.
“존 윌리엄스 연은총재, ‘6월에 금리 인상 진지하게 논의될 것”(뉴스토마토, 15. 3.6 )
“빌 그로스, ‘연준, 올해 6월 금리인상 할 것’”(이데일리, 15. 3. 3)
“엘 에리언 ‘미 연준, 9월까지 금리 인상 단행’”(이데일리 15. 3. 3)
당시 샌프란시스코 연은 총재였던 윌리엄스(지금은 뉴욕 연은 총재죠)는 6월 금리 인상 가능성을, 그리고 채권왕 빌 그로스도 6월 금리 인상을 점치고 있었죠. 개인적으로 제가 많이 참고하는 엘 에리언은 그보다 다소 늦은 9월 금리 인상을 예상하고 있었답니다. 전반적으로 15년 6월과 9월 금리 인상을 생각했는데요… 문제가 생기죠… 15년 6월 조금만 더 지켜보고 진행하자면서 한 템포 늦춰가기 전략을 썼던 당시 Fed의 옐런 의장은 15년 9월 인상을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5년 8월 중국의 위안화 위기가 터져나왔죠. 위안화 위기로 인해 글로벌 금융 시장이 흔들리고 달러 강세와 함께 미국 경제 성장세도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에 옐런 의장은 9월에도 금리 인상을 하지 못했답니다. 그러면서 15년 12월 금리 인상을 단행했죠.
늦게 금리 인상을 한 만큼 빠른 추가 인상을 선언했지만… (15년 말 FOMC에서 16년에는 4차례 추가 인상을 전망했었죠) 16년 1월 이머징 시장이 전체적으로 흔들리는 일이 벌어지자 16년 4차례 금리 인상은 사실 상 물 건너가게 됩니다. 16년 12월 한차례 추가 인상을 했는데요, 이건 거의 자존심에 가까웠죠.
Fed는 17년 이머징 국가를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가 동반 성장을 하게 되자 자신있게 기준 금리를 인상하게 됩니다. 17년 3월, 6월, 그리고 12월에 기준 금리를 인상했구요… 9월에는 양적긴축에 돌입했죠. 이 정도로 빠른 금리 인상이 나타나자 시장 참여자들은 다소간의 우려를 표명합니다. 금리 인상 설마 계속하는겨??? 라는 우려였죠. 그런데요… 18년 초 취임한 파월 의장은 아랑곳 하지 않고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서는데… 18년 12월까지 4차례 추가 금리 인상을 단행하게 되죠. 이렇게 미국 금리는 2.25~2.5%까지 오르게 되는데요… 이는 전반적인 글로벌 경제 성장에 상당한 무게감으로 작용했답니다. 중국을 비롯한 이머징 국가들은 이미 18년 상반기부터 흔들리기 시작했구요, 탄탄한 성장 가도를 달리던 미국 역시 18년 4분기에는 너무나 높아진 금리 앞에서 무너지게 되었죠. 18년 금리 인상이 이어지던 당시 제임스 불라드 샌프란시스코 연은 총재는 이런 얘기를 합니다. 인용하죠.
“그동안 불라드 총재는 계속해서 낮은 금리가 현재 경제 상황에 적절하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다른 연준 위원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고 지난 3월 미국의 기준금리는 1.5~1.75%로 인상됐다. 또한, 이들은 올해 추가 두 차례 더 금리를 올릴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불라드 총재는 "물가 상황과 고용 시장 상황, 다른 요소들은 추가 금리가 불필요하다는 점을 나타낸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현재 미국 고용 시장이 평형상태에 이르렀다고 묘사할 수 있다"면서 "연준은 이를 추가 금리 인상으로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전했다.
이어 불라드 총재는 "현재 경제에서 금리 환경을 평가했을 때 연준의 목표 금리가 경제를 제한하는 수준으로 가깝게 움직이고 있다"면서 "이것이 허용된다면 실수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연합인포맥스, 18. 5. 11)
네.. 18년 5월 당시 불라드 총재는 추가 금리 인상은 실수라는 표현을 썼었죠. 그러나 이후에도 3차례 추가 인상이 이어졌고… 18년 4분기부터 시장이 무너지기 시작했답니다. 불라드 총재는 최근 인터뷰에서도 Fed가 당시의 정책 실수, 즉… 금융 위기 이후 참 어렵게 만들어낸 성장 사이클로의 복귀를 물가를 우려해서 금리 인상으로 대응하다가 회복의 불씨에 찬물을 끼얹었음을 언급하고 있죠.
이런 상황이 펼쳐지자 파월 의장은 19년 초 추가 금리 인상에 대해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는 얘기를 합니다. 추가 금리 인상 속도 조절에 들어간다는 얘기였지만… 시장은 이미 알고 있었죠… 금리 인상 사이클은 끝났다는 것을요… 그리고 19년 2분기에는 양적긴축을 멈추었고, 19년 7월부터 11월까지는 세차례의 기준 금리 인하를 단행했답니다. 앞서 불라드 총재가 3차례 추가 인상을 앞둔 18년 5월에 더 올릴 필요 없다.. 더 올리면 실수다.. 라고 언급했던 그 레벨로 기준 금리가 되돌아왔던 것이죠. 이후 코로나 직전인 2020년 1월 반세기 최저 실업률을 기록했던 당시에도 금리 인상에 대해서는 쉽사리 언급하기 어려웠었죠. 그리고 닥친 코로나 사태… 저성장 저물가의 늪에 전세계 경제를 쳐박아버리는 게임 종결자가 터져나오자 기준 금리는 금새 0%로 내려갔고 무제한 양적완화에 돌입했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회복세가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이제 Fed의 출구 전략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를 하고 있죠.
이 길고 재미없는 얘기를 드리는 이유는요… 금융 위기 이후 회복의 씨앗이 나타났던 적이 분명히 있었다는 겁니다. 성장세도 두드러졌고 회복의 징후가 강한 만큼 금리 인상을 논했던 적이 있었다는 것이죠. 특히 미국보다 성장 회복세가 빨랐던 한국도 그런 케이스들이 있었죠. 저는 지난 번 에세이에서 09년 한국은행의 기준 금리 동결을 언급해드렸는데요… 당시 한국 경제는 수출을 중심으로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었죠. 금리는 낮은 수준인데.. 회복은 빨라요… 그리고 수출 성장을 촉진하고자 고환율 정책을 쓰고 있었던 만큼 원화 약세로 인해 해외에서 수입되어 들어오는 물건의 가격이 비싸집니다. 한국의 물가 상승 압력도 높아졌구요… 09년 하반기에는 부동산 시장도 다시금 들썩이기 시작했죠. 그럼 당연히 한은도 기준 금리 인상을 논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당시 기사 인용합니다.
“이성태 한은 총재, ‘금리 올려도 긴축 아니다’”(경향신문, 09. 9. 10)
“금리 11월 인상 유력”(파이낸셜뉴스, 09. 9. 10)
금융 위기 이후의 빠른 회복에 힘입어 한은 역시 기준 금리 인상을 고민하고 있었죠. 이미 09년 6월 금통위부터 징후는 포착되었는데요, 09년 9월 금통위에서는 금리 인상을 시사하는 발언이 총재로부터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언론에서는 11월 금리 인상이 유력하다는 얘기가 나왔죠. 실제 채권 시장 역시 이에 발맞춰 강한 금리 상승으로 회답했구요… 다양한 경제 주체들은 금리 인상에 대비하기 시작했더랍니다. 국채 금리 뿐 아니라 은행권 금리 뿐 아니라 CD금리 역시 뛰어오르기 시작했죠. 타이틀만 인용하고 갑니다.
“은행 금리, 기준 금리 인상 조짐에 상승”(아주경제, 09. 9. 14)
그럼 금리 인상은 언제했을까요? 네.. 10년 7월에 금리 인상은 처음 단행이 되었답니다. 09년 11월 인상 가능성이 제기되었던 것과는 다소 시차가 존재하죠. 그리고 각종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인해 생활 물가가 빠르게 뛰어올랐던 2011년에도 11년 6월 3.25%까지 기준 금리를 인상한 이후 물가가 쉽게 잡히지 않자 추가 금리 인상을 고민하게 되죠. 앞서 말씀드렸던 11년 8월의 유럽 재정 위기로 인해 성장에는 일정 수준 스크래치가 났음에도 물가 잡기가 최우선 타겟이었던 만큼 한은은 추가 금리 인상을 고민할 수 밖에 없었답니다. 당시 기사를 보시죠.
“김중수 한은 총재 점진적 금리 인상 시사”(서울경제, 11. 7. 22)
“한은 총재 ‘기준금리 인상한다’”(세계일보, 11. 9. 27)
그렇지만 유럽 재정 위기 및 미국 신용 등급 강등으로 인한 성장 둔화 우려가 상존했기에 추가 금리 인상은 계속해서 늦춰졌는데요…. 인플레 압력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자 12년 초에는 지준율 인상 카드를 고민할 정도였죠. 그리고 각종 해외 기관들은 12년 연내 추가 금리 인상을 점쳤답니다. 관련 기사 인용하죠.
“한은 지준율 인상 카드 꺼낼까… 기준금리 인상 쉽지 않은 상황”(국민일보, 12. 1. 9)
“하반기 기준금리 인상 전망 확대”(머니투데이, 12. 3. 7)
“해외 IB, ‘한, 기준금리 연말 인상 가능성’”(이투데이, 12. 3. 14)
그럼 언제 한은은 추가 금리 인상을 단행했을까요? 네.. 12년 7월에 한국은행은 기준 금리를 인하합니다. 저거… ‘인상’인데 ‘인하’로 오타친 거 아닌가 싶으실 겁니다…… 실제 기사 인용해드립니다.
“기준금리 41개월 만에 전격 인하… 성장 엔진 ‘급랭’, 한은도 급했다”(한국경제, 12. 7 .12)
기존 에세이에서 물가가 높았던 국면으로 08년 8월과 2011년을 언급해드렸던 바 있습니다. 고물가로 인해 연약한 성장의 회복세가 억눌리는 상황에서… 물가에 초점을 맞추면서 통화 정책의 지원 역시 줄어들게 되자 성장이 빠르게 둔화되었던거죠. 위축되는 성장과… 그런 성장의 위축이 일시적으로 강하게 튀었던 물가를 함께 끌어내리자… 한국은행은 기준금리 인하 사이클에 돌입하게 됩니다. 그리고 12년 10월에 추가 인하.. 13년에 추가 인하.. 14~16년에도 추가 인하에 나서면서 기준 금리를 1.5%까지 낮추었죠.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요… Fed나 한국은행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경기 회복에 대한 열망이 강하고… 이례적으로 완화적인 통화 정책을 계속해서 이어나가는 것에 대한 부담감 역시 상당하다는 것이죠. 자산 가격의 급등 얘기가 나오고 가계 부채의 급증 얘기가 나오고… 성장 불균형, 그리고 예기치 않은 물가의 급등 우려… 이런 얘기들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눈 앞에서 그런 현상이 실제 나타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많습니다. 그럼 당장이라도 통화 정책을 정상화해야겠죠… 그렇지만… 통화 정책을 정상화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뜻!밖!의! 부작용에 대해서도 고민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적어도 금융 위기 이후 지난 10년간 예기치 않은 부작용들이 나타났던 것을 감안한다면요… 중앙은행 역시 미래를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중앙은행들이 이구동성으로 그 때 그 때 통화 정책 회의를 단행하는 시점의 데이터에 의존해서 통화 정책을 결정하겠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죠.
그리고 어떤 중앙은행은 과거처럼 단순히 2%위로 물가가 올라오면 바로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긴축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과거 2%를 하회했던 시간만큼 물가가 2%보다 높더라도 보상을 해주겠다라는… 이른 바 평균물가목표제로 역사적인 전환을 단행했죠. 네, 그게 바로 Fed죠. 출구전략 과정에서 예전처럼 2% 물가 목표제를 시행하고 있었다면 지금 같은 상황에서 출구전략을 단행하지 않았을 때 정책 신뢰가 없다는 비난에 직면했을 겁니다. 그러나 평균물가목표제로 전환했기에 시장과의 일정 부분 소통이 가능한 거겠죠.
과거 회복 과정에서 성급한 출구 전략을 썼다가 실패를 했던 경험.. Fed는 2010년, 2011년, 2013년, 2015년, 2018년에 겪어봤답니다. 그리고 당시 현재의 재무장관인 옐런은 Fed의 중역으로 이런 과정을 지켜봐왔겠죠. 회복이 나오는 과정에서 과연 어떤 대응을 하게 될까요? 과거의 기억을 감안한다면 한템포 정도는 늦춰가는 정책을 쓰게 되지 않을까요? 그럼 바로 반론이 나올 겁니다. 당장 올라오는 물가 상승 압력과 자산 가격 우려는 어떻게 할 거냐는 반론이 그거죠. 옐런 역시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실제 출구 전략을 강하게 쓸 수도 없고, 쓰지 않을 수도 없을 때에는 구두 경고를 강하게 하는 게 답입니다. 혹은 시장이 충격을 받지 않을 정도의 미세한 출구 전략을 통해 시장의 물가 및 자산 가격 상승에 대한 방만한 자신감을 흔들어놓는 것도 답일 수 있겠죠.
이렇듯 일시적인 물가 상승, 예상보다는 약한 성장, Fed의 출구전략 딜레마를 반영하여 미국 국채 금리는 1.5%를 하회하는 듯 합니다. 향후 물가 서프라이즈, 혹은 특정국의 선제적 출구 전략 등이 일시적으로 금리가 튀어오르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는 있지만 금리의 중력이 아래를 향하고 있는 만큼 일시적인 상승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주말 에세이 다소 길어졌네요. 여기서 줄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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